임기를 시작하는 새 대통령에게 덕담과 질정을 함께 드리고 싶은데, 그중 덕담은 풍수에 관한 것이다. 용산(龍山)을 둘러싼 현대판 풍수사(風水師)들의 잡설을 일축하면서 얘기를 시작하려 한다. 허황과 낙관 가득한 풍수 차원의 용산 대망론을 물리치는 것, 전근대적 풍수 담론과의 연(緣)부터 끊어드리는 게 첫 번째 과제다.용산에 용(龍)이 있기는 한가. 도대체 무얼 보고 용을 얘기하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청와대 뒤편의 북악은 자하문터널 쪽으로 급히 주저앉는다. 명백한 몰락의 산세로 인해 지금의 경복궁 터는 한때 풍수적 진가를 의심받았다.
‘주역이 무속’이라는 오해가 정치판에 팽배한 시절에 주역 들고 정치평 하는 게 마뜩잖지만, 세월의 긴박함을 핑계 삼아 몇 마디 보태기로 한다. 20대 대통령 선거가 며칠 앞이다. 이재명·윤석열·안철수·심상정 등 주요 대선 후보들은 쓸 수 있는 카드를 소진했다. 중장기 정책과 백년대계로부터 음해, 과장, 적반하장, 시치미, 소설(小說)까지 온갖 장치를 융단폭격으로 퍼부었다. 마지막 토론회 직후엔 윤·안 두 후보가 심야·새벽의 장기 회동을 통해 은밀하고, 전격적이며, 파격적인 ‘반전 단일화’를 끌어냈다. 모든 패를 활용했다. 이렇게 사
안철수는 한국 정치사의 해프닝으로 기록될지 모른다. 그 해프닝은 정기적 철수(撤收)와 일상적 치기(稚氣), 그리고 선거 국면에서의 단일화론으로 요약된다. 그중 단일화는 안철수의 최종 병기로, 선거 때마다 양보·사퇴 또는 합의로 형식을 달리하며 그의 정치생명을 이어줬다. 가히 단일화 신공(神功)이라 할 만하다. “내가 MB의 아바타인가요?”란 질문으로 스스로를 고립시킨 2017년 대선을 빼곤, 안철수 곁엔 늘 ‘단일화’가 있었다.20대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안철수란 존재는 정치판에 다시 ‘단일화’를 소환한다. 능동적 소환이든 우발적
문재인 대통령의 표정과 행보에선 실존적 불안 같은 게 자주 읽혔다. 약속했던 국민과의 ‘소통’은 없었다. 조율되지 않은 대화를 피하는 눈치였다. 민감한 이슈와 관련해 법적으로 책잡힐 소지를 두지 말자는 참모들의 조언이 있었을 것으로 사람들은 생각한다. 월성원전의 폐쇄 과정에서 나타난 관련자들의 신경증과 조급도 대통령 심기의 반영이었기 쉽다. 정권 차원의 금기(禁忌)인 듯 어떤 일에도 사과하지 않았다. 사과 과정에서 불가피한, 사실관계에 대한 인정이 나중의 법적인 다툼에서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을까 걱정했을 게다. 세밑엔 자신이 천명한
주역(周易)에는 혁명의 추억이 담겨 있다. 춘추전국 이전, 고대 중국의 은·주 교체기에 주나라 창건 세력이 감당해야 했던 고난과 고심이 고스란하다. 주역은 일부 신봉자들이 떠들어대듯 희대의 예언서나 마음공부의 책이 아니다. 신비의 경전 따위는 더더욱 아니다. 피의 흔적과 냄새가 행간에 진하게 밴, 왕조교체 시국의 르포에 갈음한다. 직설적 언어 대신 암호를 표면에 둘렀지만, 저널의 성격도 띤다. 바람 찬 연말, 고대의 비급(祕笈)을 화두로 꺼내드는 건 저널·르포로서의 주역에 내재한 특유의 ‘왕조교체’ 분석 틀 때문이다.“꽃잎을 포갠
대선(大選)과 주술(呪術), 참 난해한 인연이다. 정치와 제사는 한 몸이었으니 깊은 인연이라 해야 하나. 고리짝 같은 시절의 제정일치(祭政一致)가 사라지고 한참인데 여전히 서로를 놓지 않고 있으니 질긴 인연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각별한 인연의 연유에 대해선 잊자. 대신 2021년 11월의 주술(呪術) 정국을 일도양단하면 두 가지 논점이 남는다. 손바닥에 왕(王)을 새긴 자는 왕이 되는가. 화천대유(火天大有)의 패(牌)를 쥔 자는 대권도 거머쥐는가.왕과 화천대유, 둘 다 부적(符籍)이다. ‘왕’이 명시적이고 솔직한 부적이라면, 주역